미로슬라브 볼프, '...자아와 그 중심'(<배제와 포용> 중에서)
바울은 중심을 지닌 자아를 전제한다. 더 정확히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중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는 잘못된 중심을 지닌 자아를 전제한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재설정하는 방식은, 타인에 대한 동일시나 거부의 과정을 통해, 충동과 욕망을 억압함으로써, 자아와 타자의 이미지를 주입하거나 투사함으로써, 두려움의 원인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적을 만들어 내거나 적개심을 품음으로써, 충성심을 만들어 내거나 그것을 깨뜨림으로써, 사랑하고 미워함으로써, 지배하려 하거나 스스로 지배당함으로써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명확히 나눠지지 않고 뒤섞여 있다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 '중심'을 만들든지,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바울은 자아가 중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행동을 기술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단어는 "십자가에 못 박힘"이다... 바울은 동일한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힘'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힘'은 '중심으로부터 벗어남'(de-centering)이라는 용어로 치환할 수 있겠다. 그 다음에는 동일한 자아의 중심을 재설정(re-centering)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는 바로 이와 동일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즉 믿음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와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중심을 재설정'한다... 즉, 그리스도는 자아 안에 사시며, 자아는 그분과 더불어 산다.
중심을 재설정하는 과정에서 자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자아는 그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옛 중심을 변화시키고 보강하는 새로운 중심을 얻었다. 중심을 재설정하는 것은 자아를 부인하고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새로운 중심이 중심을 벗어난 중심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믿음와 세례를 통해 자아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재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자아의 중심에는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자아를 폐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 순수성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몰아내는 '패권적 중심성'이 아니다. 반대로 새로운 중심은 자아를 개방하고, 자아로 하여금 타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고 자신 안에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어떤 단일하며 변하지 않는 '본질' 속에서가 아니라, 고통당하신 메시아에 의해 가능해진 사랑, 즉 그분의 모범을 따르는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 안에서 자아의 중심을 발견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이라는 이 '중심을 벗어난 중심'─가장 확고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동시에 가장 철저하게 개방적인─은 자아의 문턱에서 타자성의 운명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문지기다. 이 중심으로부터 배제에 관한 판단을 내려야 하며 배제에 맞서는 싸움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자아에게 배제에 대한 저항은 곧 포용 실천의 이면과 다름없다.
- 미로슬라브 볼프, <배제와 포용>, 배제, ...자아와 그 중심,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