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굴에서 모압 미스베로, 그리고 다시 유다 헤렛 수풀로
아둘람 굴로 도망간 다윗에게 그의 형제와 부모가 찾아왔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도 다 그에게 모여 들었다.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다윗과 함께한 자는 어느덧 사백 명 가량 되었다. 그들이 머문 아둘람 굴은 임시거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사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계속해서 그곳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었다. 더더구나 연로한 부모가 눈에 밟혔을 것이다.
다윗은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향했다. 룻의 고향이기도 한 모압에는 먼 친척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가 양친을 부탁할 만큼 그의 가족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압 왕을 찾아가 자기 부모가 모압 땅에 머무를 수 있도록 청했다. 도망자 신세인 자기 앞 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가족이 연대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양친을 모압 왕에게 의탁한 다윗은 모압 근처 요새에 머물렀다.
몇몇 학자들은 그때 다윗이 머문 요새가 맛사다일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곳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이스라엘이 로마군과 최후의 항쟁을 펼친 곳으로 유명하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는 실바 장군에게 10군단을 이끌고 맛사다로 가 대규모 포위 작전을 펼치게 했다. 그러나 2년 동안 번번이 공격에 실패했고, 공성퇴를 끌고 올라갈 수 있는 대규모 경사로를 6개월에 걸쳐 축조한 후에야 겨우 함락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다윗이 머문 곳이 맛사다라면 그곳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피난처였을 것이다. 지리적 위치상 그의 양친이 머물고 있는 모압과도 가까워서 종종 부모를 찾아뵙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모처럼 누리는 안정감과 쉼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지자 갓이 다윗을 찾아왔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말씀하시길 이 요새에 머물지 말고 이곳을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하신다. 사래의 학대를 피해 수르 광야길로 도망간 하갈을 찾아와 다시 그 학대 밑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신 그분이 다윗을 찾아와 다시 유다 광야로 돌아가라 하신다. 다윗은 망설임 없이 요새를 떠나 유다 광야로 돌아가 헤렛 수풀에 거한다. 훗날 그의 시편은 그날의 결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 당신께서 친히 나의 요새가 되십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