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교, '윤동주 현상에 대하여'
'윤동주 현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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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실텐데 전화 주시고 메일과 메시지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몸이 불편하여 성의있게 말씀 못 드리고 전화로 말도 잘 못하고, 답신도 제때 못 드려 죄송합니다. 참조하셨으면 해서 누워 있다가 몇 자 여기에 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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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윤동주에 대해 썼고, 왜 매년 2월이면 윤동주에 대해 강연하고, 최근 '윤동주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가장 많이 하십니다. 여기에 '윤동주 현상'에 대해서만 몇 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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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윤동주 현상'에 대해 저는 조금 염려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윤동주가 우상이 되고,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소비'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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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친일파들이 국정교과서 시대에 자신들의 면죄부로서 윤동주를 이용했습니다. 군부독재시대에 이순신이 애국의 화신으로 이용되었듯이, 윤동주는 애국주의 코스프레(Cosplay, 분장놀이)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한나라당 의원이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읽을 때 괴기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애국을 들먹이며 부패한 자가 윤동주의 「서시」를 인용할 때 마음 아픕니다. 윤동주 시인이 바라던 것이 이런 모양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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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분명 윤동주가 상품화 되는 경향이 보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을 위해 상품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정확히 잘 전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 책도 엄중한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판매되는 식품에 불량식품이 있지만, 야생 그대로 유통되는 좋은 먹거리도 있습니다. 영화<동주>를 저는 아주 긍정적인 상품으로 보았습니다. 시사회와 기자회견 때 말씀드렸지만 잘 만든 작품이며, 나중에 글로 길게 쓰려 합니다. 반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상품과 이벤트들이 많습니다. 잘못 만든 시집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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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동주가 가장 바라던 '현상'은 무엇일까요.
인터뷰할 때마다 제가 말씀 드렸던 것은 윤동주 시가 자기성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사회를 변혁하는 데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기성찰을 깊이 한 사람이야말로 진정 사회변혁 나아가 혁명을 이룰 수 있는데 그것을 윤동주가 보여주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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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연합뉴스 기자분과 전화로 대화했는데 전화내용을 녹음해서 낸다는 말을 아파서 못 들었는지 전화로 편히 말했던 내용이 TV에 나와 조금 놀랐습니다.
"자기 성찰의 시가 굉장히 많잖아요. '자화상'이라든지 자기를 들여다보는. 현대인들이 자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질 못해요.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성찰을 하게 하는…" https://youtu.be/b2XfbeXfI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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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현상'에 관심 가져주신 김지선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녹음해서 내는 인터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 잘 대답할 걸 그랬다 싶습니다. '윤동주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해 저는 졸저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501면부터 쓴 <큰 고요 곁으로>에 다섯 가지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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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윤동주의 시는 자기와 존재를 투시하는 '성찰의 언어'다.
둘째, 윤동주의 시는 기억해야 할 것을 '한글'로 기록한 '기억의 집'이다.
셋째, 윤동주는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곁으로의 시인'이었다.
넷째, 그의 사랑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거대한 사랑'이었다.
다섯째, 윤동주의 시는 실천을 자극하는 '다짐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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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섯 가지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썼습니다. 그것이 윤동주 시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알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우상으로나 상품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윤동주 시집이나 상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가 생각했던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윤동주 시인의 독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했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 반값등록금에 속은 대학생들, 용산 철거민들, 세월호 유족,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 등에 다가갈 때, 연탄 나르기라도 할 때, 독거노인에게 반찬을 드릴 때,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없이 책만 읽고 영화만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윤동주는 '배설'의 한 방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변혁에 대한 진정한 실천없이 체 게바라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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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를 '자기성찰의 시인'으로 가두지 마세요. 그의 삶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서시」)로 끝나지 않았어요. 윤동주를 '기독교 시인'으로 가두지 마세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자세를 갖고,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모가지를 드리우"는 실천을 할 때, 바로 그때 이 사회에 혁명이 시작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윤동주 현상'일 것입니다. 윤동주는 '자기성찰이라는 큰 고요 속에서 사회적 변혁을 다짐했던 시인입니다. 졸저 마지막 문단이 제 생각을 응축해 놓은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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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만들어진 우상이나 상업적인 문화 상품이 아닙니다. 윤동주는 엄청난 독서와 진지한 삶의 자세로 지리멸렬한 시대에 진지하게 응전했던 젊은이였습니다. 윤동주의 시는 독자들에게 참혹한 시대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버티고 이겨내라고 권합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 있는 인간의 위엄을 지키라고 나지막이 권합니다. 독자들이 각자 '얼음물 속의 한 마리 잉어'가 되어야 한다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윤동주는 철저한 자기성찰로부터 출발하여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제시했습니다.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김수영, 「푸른 하늘을」)라고 했던 그 자세가 윤동주의 시에도 보입니다. '윤동주'라는 이름은 우리 자신과 이 사회를 조용히 혁명시키는 큰 고요입니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그의 자세는 살인적인 빈곤과 온갖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의 시는 "어진 사람들"을 호명하며, 위로와 눈물로 여전히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습니다."
ㅡ김응교,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문학동네, 2016, 510~5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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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인터뷰 하면 짧게는 십여 분 길게는 서너 시간 대화해야 하는데 요즘 제가 진통제 없이 대화하지 못합니다. KBS TV 특집과는 4시간 인터뷰 했고, 연합신문, 조선일보, 문화일보 기자님과 대화했고, 곧 회복할 거 같아 이후에 MBC, EBS는 출연하기로 했고, 뉴스앤조이 등 여러 매체들과 다음주에 인터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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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있게 말씀 드리지 못해 이렇게 써둡니다. 제 의도는 졸저의 가장 마지막 문장, 저 마지막 단락의 노란색 밑줄 친 부분 때문에 윤동주 책을 썼다는 의도를 여기에 써둡니다. 윤동주 시인의 의도가 잘 전해지도록 잘 써주시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 김응교(시인, 1962-), '윤동주 현상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