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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아나빔 2021. 7. 10. 21:23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이래 토마시는 테레자와의 만남이 여섯 우연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생각 때문에 불편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중략)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중략)

우리의 일상적 삶에는 우연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부르는, 사람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일어난다.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순간 토마시가 술집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엄청나게 많은 우연의 일치를 우리는 대개 완전히 무심결에 지나쳐 버린다. 토마시 대신 동네 푸줏간 주인이 테이블에 앉았다면 테레자는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것에 주목하지 못했을 것이다.(베토벤과 푸줏간 주인의 만남 역시도 기묘한 우연의 일치지만.) 그러나 막 싹트는 사랑은 그녀의 미적 감각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녀는 그 음악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매번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감격할 것이다. 그 순간 그녀 주변에서 일어날 모든 일은 그 음악의 찬란한 빛에 물들어 아름다울 것이다.

(중략)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체코 출신 소설가, 192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2부 영혼과 육체, 5부 가벼움과 무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