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환기
웬만한 광주행 버스편은
아나빔
2019. 9. 12. 23:11
웬만한 광주행 버스편은 거의 매진이라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현실'이라 간주했던 치열한 삶의 터전이 마치 '가상'처럼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잠시 중단된 일상에서 오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때때로 우리 삶에 대한 노력과 수고가 중단된 곳에서 우리 삶의 진정한 필요를 채우시는 하늘 아버지의 역설적인 은혜를 묵상합니다. 제 경우엔 고향에 일 년에 딱 두 번 내려 가는데 이 마저도 귀찮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도 자주 만나기 힘든 가족, 친지 모두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 피우는 명절 아침이 되면, 귀성길의 피로도 잊게 만드는 어떤 희열이 솟아나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상에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최초의 공동체라는 점에서 어쩌면 가정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며칠의 명절 연휴가 우리 선생님들께 쉼과 회복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명절이면 장시간 운전이나 음식 장만으로 몸도 마음도 분주해지기 십상이지만 평범한 일상 가운데 감추어 두신 은혜의 선물을 풍성히 누리시는 한가위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