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1. 첫 번째 이야기
2주 전이었다. 부서 교사였던 권사님 한 분이 대뜸 오랜만에 전화를 주셨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라 이미 한 차례 통화 거부를 했는데 점심 시간 즈음에 그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저?"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인데 어느 분인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분만큼은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야지. 그래야 하는 분 같은데. 누구지?'
"저 윤** 권사예요."
윤 ** 권사님, 딸뻘인 전도사를 진심으로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품어주시고 세워주셨던 권사님. 초등부 교사로 봉사하시다가 따님이 둘째를 출산하고 나서는 손주 양육을 도와주시느라 2년 전에 사임하시게 됐다. 1년 정도 사부님과 1부 예배 성가대로 봉사하시다가 작년 겨울에 여생은 모교회를 섬기시겠다고 교회를 옮기셨다. 교역자 사무실로 찾아와 상품권을 손에 쥐어주시며 마지막 인사를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권사님 성함 석자에 내 마음은 그 자리에서 무장해제 됐다.
'어떻게 권사님 번호가 없을 수 있지? 이렇게 죄송할 수가.'
"권사님, 안녕하세요!"
"전도사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권사님도 잘 지내셨어요?"
"저도 잘 지냈어요. 전도사님 아직 초등부에 계세요?"
"네, 그럼요. 저 아직 초등부에 있어요."
"그러셨구나. 요즘 전도사님 교회에서 못 뵀다는 얘기를 들어서 사임하신 줄 알았어요. 인사 한 번 드리러 전화드렸어요."
"참, 전도사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저 올해 서른 다섯이에요."
"전도사님 벌써 서른 다섯이에요?"
"네, 놀라셨죠? 저도 제가 이렇게 빨리 서른 다섯이 될 줄은 몰랐어요."
"전도사님, 혹시 제가 누구를 소개하면 만나볼 의향이 있으세요?"
"아, 네. 저야 소개해주시면 좋죠."
"저희 아들 직장 동료가 있는데 다른 조건 다 마다하고 믿음 좋은 사람을 찾는 형제가 있어요. 전도사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나는 우리 전도사님이 참 좋거든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고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해요."
"87년생이니까 그 형제도 서른 다섯이에요. 전도사님 괜찮으시면 제가 말해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은 통화를 마쳤다.
권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던 전도사를 사위로 맞으셨다. 권사님이 초등부 교사로 계실 때 사위 목사 임직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위 분은 처가살이를 하셨는데 권사님 부부는 사위랑 같이 살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며 사위 사랑이 매우 극진하셨다. 동거하는 처가 장인장모에게 그런 극찬을 듣는 사위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늘 궁금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사위를 한 사람의 목사로서 진심으로 사랑하며 존경하는 권사님 부부의 믿음도 대단했다. 그 믿음에는 상식적인 기준을 초월한 숭고미가 서려 있었다. 나는 그런 권사님과 집사님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리고 나는 존경하는 어른의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하고 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