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체취가 남아 있는 이불장도 머잖아 정리한다고 합니다. 당신의 심장은 거짓말처럼 종말을 고하고, 차갑게 식은 몸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지 여러 달인데... 집안 곳곳에 당신의 흔적은 여전합니다. 당신이 앉던 소파, 당신이 즐겨 보시던 TV, 당신이 옷매무새 다듬으시던 화장대, 당신의 발길, 당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이 집도 머잖아 정리한다고 합니다.
당신의 흔적은 당신께서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오직 제 희미한 기억 속에, 공동의 기억 속에만 계십니다. 존재는 사라졌는데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 속에 계신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십이까, 존재하는 비존재이십니까? 당신은 사멸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존재하는 방식이 변한 것입니까?
당신을 먼저 내려두고 달려온 시간이 제 기억 속에서 당신을 썰물처럼 밀어냅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체취, 당신의 주름진 손, 당신의 웃음소리, 당신의 습관 하나하나를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할머니, 제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 사멸해간다는 게 서럽습니다. 제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 그것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사실이 섬뜩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일하게 현재이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과 그분 앞에서 당신은 분명 존재하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이 시간을 버티게 합니다.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당신이라는 세계. 그 위에 부옇게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내며 당신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일상의 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