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Jascha Heifetz(1901.2.2~1987.12.10)의 Zigeunerweisen만큼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곡이 또 있을까? Heifetz는 익명의 집시로 분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애오욕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Zigeunerweisen은 집시(zigeuner)와 선율(weisen)의 합성어로 스페인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Pablo de Sarasate(1844.3.10~1908.9.20)가 헝가리 여행 중 수집한 집시들의 민요를 바탕으로 1878년 작곡한 곡이다.
여기에서 집시는 주어진 삶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무명의 민초인 동시에 보편적 인간의 표상이다. 집시들의 삶과 소수계층의 일상을 담아온 Josef Koudelka는 일전에 "집시는 인간의 삶과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기에 매우 적합한 강렬한 피사체였다."고 말한 바 있다. 본래 인간은 '필멸의 존재(mortalis)'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지상에서 영원히 나그네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집시들의 희로애락은 우리 모두의 희로애락인 셈이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다.
이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필자는 각 부분에 다음과 같은 부제를 달아주고 싶다.
제1부(moderato): '비극의 서막으로서의 인간의 탄생'
제2부(lento): '생과 사의 파노라마: 고단한 삶의 무게'
제3부(allegro molto vivace): '일탈: 삶의 무게를 잠시 벗고'
제3부는 빠른 템포의 춤곡인데 민초들의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진다. 열광적인 춤판이 벌어지는 곳은 무게가 작용하지 않는 무중력 상태이며, 일상적인 시공간에서 단절된 곳이다. 이 축제의 장에서 만큼은 일시적으로나마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양한 형태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한데 어울릴 수 있다. 우리네 평범한 인생은 이 유희적 어울림을 통해 다시 계속되는 일상을 견뎌낼 힘을 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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