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늘도 교회에 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칭얼대면 기사님 뵙게 해주시나요? 빨래 건조대에 수건을 널며 마음 속으로 읊조린 자조섞인 한탄이었다. 쇳덩이처럼 무거운 발을 이끌고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손을 흔드는데 경적을 가볍게 울리며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스르륵 섰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뒷문을 열자마다 검은 선글라스 뒤로 낯익은 미소가 보였다. 수호천사 기사님이 아니신가! 내 영성이 바닥을 칠 때에는 이런 방법으로도 그분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시는구나. 올해 초에 한 번 뵙고나서 반년만에 기사님을 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기사님 뵙는 날이면 꼭 하나님이 보내주신 수호천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말씀 드리고 말았다. 기사님께 드릴 만한 마땅한 명함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 한 장을 꺼내 연락처를 적어드렸다. 꼭 식사 대접 한 번 하고 싶다고 연락주시라며.
5월 8일, 그렇게 한 주가 지난 주일 아침, 교역자실에서 작업을 하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교회갈시간이되였는되 안나오시에걱정되네요 버스정류장에서 아저씨" 우리 기사님이시다! 연락처를 드린 이후로 기사님은 일요일 오전이면 우체국 앞에 정차하시고는 10분이고 30분이고 교회가는 아가씨가 나올 때까지 목을 빼며 기다리셨다. 100원 단위로 미터기가 올라가는 기사님들에게 시간은 금인데 일요일 아침마다 그 황금같은 시간을 할애해주시는 거다. 휴일에는 편한 복장으로 나오셔서 미터기도 누르지 않고 교회 앞까지 데려다주시기도 했다. 용봉 초등학교 다닐 적에 담배 한 대 피워물러 나오신 것처럼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등하교 때마다 손녀딸 기다리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나.
자격없는 자에게 거듭 은혜를 베푸시는 그분의 사랑에 대한 유비가 아닌가. 과분한 사랑 받은 사람답게 좀 살라는 너그러운 질책인가보다. 우연이 아니라면 분명 만남 속에 그분의 뜻이 있을텐데 나는 기사님께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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