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이 오기 전 대지를 다독이듯이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석양이 내려 앉았다.
지난주 토요일, 11년 동안 사용해 온 보라색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 하나 잃어버렸다고 설에 집에 내려가는 것도 포기하고 히키코모리처럼 방에 처박혀서 꼼짝달싹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겨울 들어 처음 앓는 감기 탓을 해보았지만 마음이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이와중에 서늘한 자취방은 며칠 동안 짙은 응달에 우중충했다. 폐인 생활이 싫증날대로 나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데 지금 내 꼬락서니가 영 보기에 못마땅했다. 그맘때쯤이었다.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은 현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가야겠다. 내려가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정말이지 한달음에 내려와버렸다.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광천 터미널로 마중나온 아버지를 뵙는데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순간 당황한 나머지 나는 난생 처음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우스꽝스럽게 뒤뚱뒤뚱 걸었더랬다. 그러고 나서 말꼬리를 흐리며 꾸벅 목례를 하고는 서둘러 차에 올라타 버렸다. 엄마다. 엄마는 핼쑥해진 볼을 보고 얼굴이 반쪽이 됐다며 걱정이시다. 조금 전까지 신안동에서 짐 정리하고 오시는 길이란다. 그후 터미널에서 집으로 가는 동안 이따금씩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차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에 우리 모두 편승해버렸다. 향수에 젖어 광주에서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시켰나보다. 광주에 두고 왔던 어려움은 여전히 어려움으로 남아 있었다. 김이 샌 사이다처럼, 줄을 당겼는데도 터지지 않은 폭죽처럼, 펄펄 끓는 물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그런 분위기가 사람의 기운을 쑥 빼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란 존재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
벌써 집이다. 내게는 아직까지도 낯선 집이다. 아버지는 차가 멈추자마자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짐을 챙겨들고는 먼저 황급히 자리를 뜨셨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나는 으레 처량한 아버지 뒷모습을 무심한 척 바라보며 뒤따라 걸었다. 본인을 탐탁지 않아하는 장모랑 한 집에 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하루하루의 삶이 아버지에게는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겠구나 싶다. 우리 아버지, 집에서도 눈치를 살피며 기를 펴지 못하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 아버지와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딸은 본의 아니게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해버렸다.
나는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앉아 엄마가 깎아주는 과일을 주워 먹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물에 밥을 말아 김치만 얹어 먹는대도 보약 한 재보다 낫다. 참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명절을 혼자 보내기가 힘들어진다.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워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고향에 내려가 얼굴이라도 비추는 게 부모형제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니 말이다. 혈육이 두 발을 딛고 사는 고향 땅을 밟는 작은 의식이 알게 모르게 타지에서의 반년을 혹은 일년을 버티어낼 힘을 주나 보다.
엄마는 밥상 머리에 앉아 빈 접시에 삶은 꼬막을 까서 올려 놓았다. 내가 껍질을 들고 한 알을 쏙 빼먹는 동안 엄마는 벌써 두 알을 벌기어 올려 놓고 양념장을 올려 주신다. 양념장은 큰고모가 주신 태양초 건고추를 다져서 만들었다. 몇 번을 삶아내 소금기를 쏙 빼내서 그런지 꼬막이 쫄깃쫄깃하면서 삼삼하다. 잘게 다진 건고추가 씹힐 때마다 입술이 얼얼해지는 게 참 맛있다. 지금 이 순간을 누릴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돌이켜보면 행복은 언제나 내가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을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엄마랑 일 년만에 마주앉아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전라도에서는 굴을 석화라고 부르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 석화를 무척 좋아하신다는 것이 한 가지이고, 또다른 한 가지는 몇 달 전만하더라도 엄마 혈중 철분 수치가 정상보다 매우 낮아 제로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작년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 후 교회 성도들의 성화에 못이겨 병원에 갔더니 철분 수치가 이렇게 낮으면 머리가 어지러워 제대로 걷지도 생활을 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버티셨냐고 하더란다. 철분제를 처방받고 꾸준히 복용하고 계시단다. 혈중 철분 수치는 보통 사람에 비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편이라고 하셨다. 몇 달 전에는 갑자기 피꼬막이 당겨서 잔뜩 사다놓고 몇날 며칠을 먹었는데 알고보니 꼬막이 혈액생성에 도움을 주더라고 사람 몸이 참 신기하다신다. 실제로 꼬막은 철분, 헤모글로빈, 비타민B가 풍부하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랑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며 꼬막을 까서 먹는데 아버지가 안방 문을 열고 반쯤 들어와 신사임당 한 장을 건네신다. 내일 새벽에 일찍 나가보셔야 한다며 손에 쥐어 주시는데 나는 이번에도 아버지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우물쩡거리고 말았다. 그것도 시큰둥한 얼굴로. 우리 아버지가 쥐어주신 5만 원은 50만 원보다 값진 돈인데 말이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나라도 살가운 딸이 되어 아버지 마음을 녹여 드려야 하는데 괜히 와서 상처만 드리고 가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됩니다.
함께 밥상을 치우고 나서 엄마는 안방에 자리를 펴주느라 바빴다. 이부자리를 봐주시고는 곧장 아버지 계시는 작은 방으로 건너 가셨다. 나는 불을 끄고 안방에 누워 외할머니랑 SBS에서 방영하는 설 특선 영화를 보았더랬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올해 망백(望百)이신 외할머니는 엄마보다 젊은 나이에 외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나서 어떻게 그 세월을 버티어오셨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외할머니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구나. 오자마자 외할머니께 세배를 드려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 새해인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오늘 하루가 참 길었다. 돌이켜보면 고마움과 아쉬움만 한가득이다. 나도 긴긴밤이 오기 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석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터인데, 하루 빨리.
2016년 광주에서의 첫날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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