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화창한 봄날이었어요.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봄날이었어요. 외할아버지 좋아하시던 뻐꾸기 울음 소리도 멀리서 들려 왔어요. 폐부 깊숙이 덥고 습한 공기를 들이 마셔도 차가운 겨울 바람이 가슴을 찔러대는 날이었어요.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우리끼리 조문객을 맞이하며 담소 나누는 사이 며칠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우리 할머니, 그렇게도 오매불망하던 외할아버지 이제 만나러 가시네요. 그날 밤 두 분은 나란히 누워 무슨 이야길 나누셨나요? 그간 쌓인 만가지 회포를 풀기엔 며칠 밤도 부족했을텐데 눈 한 번 붙여 보긴 하셨나요? 우리 할머니 질곡의 모진 세월 홀로 힘껏 끌어안고 살다 가신 거 할아버지도 잘 아신대죠? 뜨거운 눈물 하염없이 쏟아내며 수고했다 한마디 해주시진 않던가요? 우악해진 우리 할머니도 외할아버지 앞에선 수줍은 새색시 마냥 뺨에 부끄럼이 피겠죠? 혹시 땅거미 지는 해 질 녘이나 이슬 내리는 새벽녘이 춥지는 않으셨나요? 우리 할머니 이부자리는 따뜻한 아랫목에 깔아드려야 하는데... 곧 예쁜 꽃 한아름 안고 가 꽃담요 덮어 드릴게,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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