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애써온 일들이 잘 안될 때
이렇게 의로운 일이 잘 안될 때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뜻인가"
길게 보면 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이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시키시려는 건 아닌가
하늘 일을 마치 내 것인 양 나서서
내 뜻과 욕심이 참뜻을 가려서인가
"능인가"
결국은 실력만큼 준비만큼 이루어지는 것인데
현실 변화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해
처음부터 지는 싸움을 시작한 건 아닌가
처절한 공부와 정진이 아직 모자란 건 아닌가
"때인가"
흙 속의 씨알도 싹이 트고 익어가고 지는 때가 있듯이
모든 것은 인연따라 이루어지는 것인데
세상 흐름에 내 옳음을 맞추어 내지 못한 건 아닌가
내가 너무 일러 더 치열하게 기다려야 할 때는 아닌가
쓰라린 패배 속에서 눈물 속에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 박노해(시인, 1957-),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사람만이 희망이다>(느린걸음, 2011) 수록)
'북 아카이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나의 갖가지 감각이 깊이 잠겨드는》 (0) | 2018.11.26 |
---|---|
알렉산드르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 2018.02.12 |
이정하, 《낮은 곳으로》 (0) | 2017.10.04 |
최영미, 《꿈의 페달을 밟고》 (0) | 2017.09.12 |
한강, 《그때》 (0) | 2016.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