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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성속 이분법의 위험성'(<나를 따르라> 중에서)

by 아나빔 2021. 2. 17.

수도원 제도는 기독교의 세속화에 맞서고,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드는 것에 맞서는 생생한 저항이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이 저항을 참아 줌으로써 이 저항이 결정적으로 폭발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그것을 상대화했다. 실로 교회는 이로부터 자신의 세속화된 생활을 정당화할 길을 얻었다. 왜냐하면, 수도원 생활은 이제 소수의 사람이 수행하는 별난 행위, 곧 대다수 교인이 의무로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내리신 명령의 유효성을 위험천만하게도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특정한 집단에 국한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복종의 행위를 가장 높은 수준과 가장 낮은 수준으로 구분하는 일이 빚어졌다. (중략) 하지만 수도원 제도가―예수의 말뜻을 내용상 오해하여―예수를 엄격히 따르는 은혜의 길을 걸어간 것은 결정적인 실책은 아니었다. 수도원 제도가 참된 기독교로부터 멀어진 것은, 그 제도가 자신의 길을 소수의 사람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특별 행위가 되게 하고, 이것을 자기의 특별 공로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 디트리히 본회퍼(독일 고백교회 목사 및 신학자, 1906-1945), 《나를 따르라, Nachfolge》, 값비싼 은혜, 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