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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값싼 은혜'(<나를 따르라> 중에서)

by 아나빔 2021. 2. 17.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숙적이다. 오늘 우리의 투쟁의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투쟁이다.

값싼 은혜란 투매 상품인 은혜, 헐값에 팔리는 용서, 헐값에 팔리는 위로, 헐값에 팔리는 성찬, 교회의 무진장한 저장고에서 무분별한 손으로 거침없이 무한정 쏟아내는 은혜, 대가나 희생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은혜를 의미한다.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미리 계산을 치렀으니 선급한 계산서를 토대로 무엇이나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은혜의 본질이고, 미리 지급한 대가가 무한히 큰 까닭에 사용 가능성과 낭비 가능성도 무한히 크며, 은혜가 값싸지 않다면 그것이 어찌 은혜이겠냐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교리, 원리, 체계로 통칭하는 은혜, 보편적인 진리로 통칭하는 죄의 용서, 기독교의 하나님 관념으로 통칭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은혜를 긍정하는 이는 자기의 죄를 용서받는다. 그 은혜를 가르치는 교회는 그 가르침을 통해 그 은혜를 공유한다. 그런 교회에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은폐해 주는 값싼 덮개를 발견한다. 그러고는 자기의 죄를 뉘우치지도 않고, 죄에서 벗어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값싼 은혜는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값싼 은혜는 죄인을 의롭다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의롭다 인정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은혜가 홀로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 주는 까닭에, 무엇이든 케케묵은 상태로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의 행위는 쓸데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까지나 세상이고, 우리는 "아무리 최선의 삶을 살아도" 여전히 죄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무슨 일을 하든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고, 은혜 아래 있을 때―광신의 이단이 될지언정!―죄 아래 있을 때와 다르게 생활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은혜를 거스르지 않도록, 위대한 값싼 은혜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삶을 시도한답시고 또다시 문자 숭배를 격려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세상이 은혜를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니―이 은혜의 진지함을 위해, 그리고 이 대체할 수 없는 은혜를 거스르지 않도록!―그리스도인도 여타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비범한 일을 하고 싶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세속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가장 힘든 포기로 여길 게 뻔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자기 부정을 실행하며, 세상과 구별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은혜를 참으로 은혜 되게 하여, 이 값싼 은혜에 대한 세상의 믿음을 파괴하지 말고, 차라리 자신의 세상 속에서, 자신이 세상 때문에―아니, 은혜 때문에!―실행해야 하는 이 불가피한 포기 속에서, 모든 것을 홀로 처리하는 이 은혜를 소유하는 것으로 위로받고 안심하라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말고, 은혜로 만족하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죄를 의롭다 인정하는 값싼 은혜다. 이것은 죄에서 손을 끊고 전향하여 참회하는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죄의 용서, 곧 죄와 갈라서게 하는 용서도 아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가 스스로 취한 은혜에 지나지 않는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의 설교요, 공동체의 징계가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이요, 개인의 참회가 없는 죄 사함이다. 값싼 은혜는 본받음이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다.

- 디트리히 본회퍼(독일 고백교회 목사 및 신학자, 1906-1945), 《나를 따르라, Nachfolge》, 값비싼 은혜, 2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