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총궐기대회라는 어감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야겠다. 펜 몇 자루랑 형광펜을 사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야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일단 지하철을 탔다.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시위에 참가할 것도 아니면서 참여자도 구경꾼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서 주변을 얼쩡거릴 게 뻔한데, 나는 또 비겁하게 뒤에 숨어있을 게 뻔한데 도대체 무슨 염치로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으로 가야겠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4번 출구는 이미 의경에 의해 봉쇄됐고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는 3번 출구 뿐이었다. 나는 차벽과 차벽 사이 비무장지대 어디쯤을 서성거렸다. 살충제로 벌레를 박멸하듯 물대포를 쏘아대는 그네들에게 차벽 너머에 있는 시민들은 "쏘지마!"를 연발했고, 그 반대편에 있던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우레와 같은 탄식이 메아리처럼 웅웅 울리던 그곳은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저격당하는 광란의 장소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집결한 소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거의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여론도 절차도 무시한 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정부를 보면 시행령 정치라는 표현도 과언은 아니다. 국회도 법원도 지금처럼 대통령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서 삼권분립은 그저 한낱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백모 할아버지가 뇌진탕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울분에 찬 한 아주머니가 광화문역 출구를 지키던 의경 사내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몸싸움으로 번져 상황이 악화되자 교보문고 보안팀들이 달려와 셔터를 내렸다. 이내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 여자를 보며 그녀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다. 머잖아 사람들이 "머리가 깨졌대."라고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백모 할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나는 교보문고 지하매장에서 그렇게 전해 들었다.
달걀로 바위치기가 아니라 바위로 달걀치기가 아닌가. 남일 같지 않다. 한참 시간이 지나 광화문역은 폐쇄됐고 지하철역을 찾아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거리에서 수녀님 몇 분을 뵈었다. 과연 그들의 행동주의적 신앙을 행위구원론의 관점에서 가볍게 재단할 수 있는 것일까. 근현대사에서 정의와 인권의 보루가 되어주었던 그들에 대한 고마움마저 저버려야 하는걸까.
어제 나는 왜 광화문에 갔어야만 했나.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에 저항한 광주시민들의 피가 누군가에게는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도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대가였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총탄에 맞아 사망한 건 헌혈하고 나오던 여고생이었다. 집에서 부모를 기다리던 남자 어린이가 성기가 잘린 채 처마 밑에 매달려 있었고 계엄군의 총칼이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무사유와 무관심 속에 죽어가던 이들이 애타게 찾던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때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혹자는 전라디언의 피해의식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이다. 내 아들이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되자 나치 정권의 군인을 남편으로 둔 아이의 어머니는 절규했다. 마크 허만 감독은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관객들은 브루노의 죽음만 슬퍼할 뿐 유대인들의 죽음에는 별관심을 갖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이의 눈에는 그저 같은 사람일 뿐이었는데 유대인들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땅한 처우였다. 나는 사유하기 위해 나갔다. 무관심해지지 않기 위해서 나가야만 했다. 활자가, 영상이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하는 참담함을 피부로 느껴야만 무관심해지지 않을 수 있겠다는 강박관념때문에 나는 어제 광화문에 갔어야만 했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무사유와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어젯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내일은 추수감사주일이다. 그리고 오늘 프랑스 파리에서는 동시다발적 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광화문에서는 동생뻘의 의경들과 힘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대치하며 폭력을 양식삼아 증오를 키워 나갔다. 정지은은 《폭력의 얼굴들》에서 "마치 폭력의 행위자들이 폭력의 주체인 것이 아니라 폭력 자체가 주체이고 행위자들은 그저 폭력의 꼭두각시인양 폭력이 전개되는 가운데 폭력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하였다.
"아버지, 당신을 닮게 지음받은 인간이 폭력 앞에서 벌레처럼 죽어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내일 아이들에게 무슨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감사하자고 해야 하나요?"
광화문역 4번 출구 봉쇄
광화문역 3번 출구
폴리스 라인 뒤편 비무장 지대
몇 분 간격으로 물대포를 쏘아대다
끝없는 차벽
대기 중인 의경들
폴리스 라인 뒤편에 있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다
어둠은 정녕 빛을 이길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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