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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편린

여름 하늘

by 아나빔 2015. 7. 16.

일반적인 크기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가장 좋은 거리는 대략 1.5미터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 거리라는 것도 작품 크기나 화면 구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결국 미술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적당한 거리란 작품과 대화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가끔은 하늘이 두 팔을 벌려 나를 와락 끌어안아 주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있는 지금 여기가 어쩌면 하늘을 감상하기에 가장 적당한 거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쓰기시간에 밤, 별, 꿈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한 문장을 만들어가야하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어젯밤 별을 타고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 시절 하늘은 내게 가장 친숙한 소재였다. 하늘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다, 나는. 길을 걷다가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하던 습관은 그때 생겼다.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으며 하늘을 벗삼아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었다.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 세례를 받으며 경이로운 우주 한복판에서 전율하곤 했다. 하늘이 너무 좋아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해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북극성이랑 북두칠성을 찾는 버릇도 그맘때쯤 생겼을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 볼 때면 으레 그러한 상념에 빠져들곤 한다. 세월은 흘러 가는데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다. 하늘은 종종 그렇게 시간의 누적을 허물어버린다. 대자연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휘는 곧 서른줄에 접어들 아가씨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만든다.

하늘은 형형색색 다채롭다. 핑크빛 봄하늘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가을하늘은 청명하고 광활하다. 그런가하면 겨울하늘은 수정처럼 맑고 청아하다. 그런데 여름하늘은 변화무쌍해서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이면 찜통 뚜껑이 열린 것처럼 김이 솟아나다가도 비 실은 먹장구름을 몰고 올 때면 괜시리 내 마음도 눅눅하고 스산해진다. 반면 오늘처럼 맑게 갠 여름 하늘은 후텁지근한 더위도 잊게 만들만큼 트여 있어서 목마르고 지친 마음에 해갈이 된다. 구름이 넘실대는 광야같은 바다가 아버지의 너른 어깨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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