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유의 편린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봄날에

by 아나빔 2018. 5. 17.

정확히 일 년 전 오늘 아침, 아흔 둘 연세에도 정정하셨던 우리 외할머니 소천하셨다. 서울살이 십여 년을 제하고도 얼굴 맞대고 살 부대끼며 산 게 십여 년인데 풍경처럼 늘 그 자리에 계실 것 같던 분이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작별을 고하셨다. 외손주들 좋아하는 과일 한 봉지 손에 들고 문 앞에서 핸애야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환영처럼 생생한데 작고하신 지도 근 일 년이 되었다.

세상에 호상은 없다는 어른들 말씀이 허언이 아니었다. 손주만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마주 앉아 뜨뜻한 밥 한 끼하며 고인을 추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반가웠지만,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설움과 슬픔이 복받치지 않았겠는가. 상실은 분명 낯선 것이었다.

할머니, 당신께서도 기억하십니까?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봄날에 외할아버지 좋아하시던 뻐꾸기도 울고 우리도 울었던 작년 5월을.

​​​​​​​​​​​​​​​​​​​​​​​​​​​​​​​​​​​

​​​​​​​​​​​​​

​​​

'사유의 편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자도  (0) 2018.10.29
​​아둘람 굴에서 모압 미스베로, 그리고 다시 유다 헤렛 수풀로  (0) 2018.09.20
탁아의 추억  (0) 2018.03.28
파편  (1) 2017.11.05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  (0) 2017.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