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유의 편린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by 아나빔 2014. 1. 15.
아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평소에 안나가던 새벽기도를 큰 맘먹고, 나답지 않게, 나갔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집 앞 교회로. 경건한 마음으로 어젯밤 나홀로 선물 개봉식을 갖고, 드디어 오늘 새벽, 새 장갑을 착용한 채 외출 감행! 코 끝이 약간 시릴 정도의 상쾌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깨우는도다.

연습실 가는 길에 사들고 가던 연습복이랑 운동화, 지인한테 갈취한 명품 키홀더, 지인한테 빌린 디지털카메라, 최근에는 그간 설교자료를 모아논 usb 등등 지난 시간 길거리에 흘린 살림살이가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수시로 가출하는 이 놈의 정신머리 때문에 긴장 '뽝'하고 장갑에 온 신경을 쏟아 부었다.

'아(안도의 한숨), 다 이루었다.' 오늘 하루를 새벽기도로 시작했다는 뿌듯함에 '내친김에 성경도 읽어보자'하고 헬라어 성경 한 권 "똭" 뽑아 들었다. 허리 곧추 세워서 뜨듯한 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읭? 그런데 내 비둘기색 성경 어디간거야? 읭?"

다시 장갑을 끼고 교회를 찾아갔다. 장갑님 다치실까봐 맨 주먹으로 굳게 닫힌 문을 여러번 두드려보았다. 인기척이 없었다. 돌아왔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내 비둘기색 성경 홀로 예배당에 남아 기도 중이시다.

'사유의 편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로에 대하여  (0) 2014.04.28
화가와 요리사  (0) 2014.02.08
어렸을 때 피아노를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이...  (0) 2014.01.09
등록포기  (0) 2013.12.13
불필요한 침묵  (0) 2013.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