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 첫 번째 주일이다. 남성역 2번 출구 버스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가씨, 교회 가시지요?"
"어! 기사님, 안녕하세요! 이번이 네 번째네요?"
두둥!
이 기사님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댁은 숭실대 부근이시고 종종 우리 교회 맞은 편 테니스장에 오셔서 테니스를 즐기는 멋진 분이시다. 그리고 아리따운 따님이 있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종종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정전도사가 종종 뵙는 기사님이시다. "송파 예비군 훈련장 지나서 내곡동 가구단지 가주세요."라는 말이 필요없는 유일한 기사님! 교회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때마다, 마음이 지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마다 이 기사님을 만나게 된다. 마치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처럼!
그런데 오늘은 아니잖아요! 기사님을 뵐 준비가 안됐다구요. 왜 하필 오늘이에요?
전날부터 주일 사역을 준비하느라 거의 탈진한 상태로 집을 나선 정전도사는 넋은 반쯤 나가 있었고 얼굴은 반쯤 덜 완성되어 있었더랬다. 택시를 타면 일단 잃었던 얼굴을 되찾겠노라고 다짐을 했건만 이게 뭐람!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기사님을 만나다니! 이 기사님 앞에서는 거울을 꺼내들고 화장을 하기가 부끄러워서 선블록만 간신히 펴발랐다. 준비했던 설교 원고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도 포기했다.
그날은 웬지 기분이 울연해서 말없이 멍청히 앉아 있기만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양재 IC방면으로 접어들 때쯤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기사님께 말을 건냈다.
"기사님. 새해 첫 주에 기사님을 만나니 꼭 선물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
갑작스럽긴 했지만 기사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이자 선물이었으니까.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나도 그래요. 아가씨 만나서 나도 좋아요. 집이 그쪽이니까 일요일이면 아가씨 나오는 시간에 종종 거기서 기다렸다가 오거든. 그런데 오늘은 만났네."
2015년 어느날, 처음 만난 기사님은 일요일 아침에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냐며 집이 원래 그쪽이냐 아니면 출근을 하는 것이냐 물으셨다. 교회에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집 앞에 있는 가까운 교회를 가지 왜 그렇게 멀리 가냐고 하셨다. 나는 아이들 가르치러 간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나는 교회 아가씨가 됐다. 공교롭게도 그 후로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사님 택시를 몇 번 더 타면서 기사님과 각별한 사이가 됐더랬다.
기사님은 종종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택시를 몰며 보고 들은 것들을 아저씨만의 색깔을 덧입혀 들려주시곤 하셨다. 손님을 모시고 구 사랑의 교회 집회 현장에 갔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좋아 보여 씁쓸했더라는 이야기, 교회에 가는 분들은 이사를 가서도 이전에 다니던 교회를 가느라 멀리서도 교회를 가더라는 이야기 등등. 가끔은 교회 아가씨로서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다. 아저씨를 통해 듣는 교회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아저씨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참 따뜻한 분이시다. 딸벌 되는 손님에게 꼬박꼬박 손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불러 주시며 솔직하고 담백하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럴 때면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져서 사역할 힘이 생기곤 했다. 그러고 나서 내릴 때면 나도 아이들 주려고 사온 작은 주전부리들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곤 했었다(어떤 날은 바나나를 드린 적도 있었다).
"잘하고 있어. 내가 다 지켜보고 있어. 힘내렴."
그 기사님을 뵐 때면 하나님께서 내게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은 날이 아니었다. 정전도사는 사역도 접고 휴학한 후에 뉴욕 Metro World Child에 가겠다는 꿈에 부풀었다가 바로 며칠 전에 피눈물을 삼키며 내려 놓지 않았던가. 모 교회 중고등부도, 대형 교회인 S교회 사역 제안도 거절하고 아이들이 열명도 채 안되는 교회에 남아서 일년 더 사역하겠다는 마음을 품었던 내가 갑자기 한심하고 덜 떨어져보여서 울적한 그런 날에. 사역자로서의 개인적인 성장을 생각하면 Metro World Child 인턴십 과정은 내게 여러모로 유익할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전도사가 되어야 하니까,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지 자기 자신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니까, 자신의 말과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니까 내려놓기는 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날, 하필이면 그날 그 기사님을 뵌 것이다.
알 수 없는 감정들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나님께서는 혼내거나 다그치지 않으시고 이번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잘했어. 내가 다 지켜보고 있어. 힘내렴."
그분의 한 없는 사랑 앞에 부끄러움만 덩그러니 남아 고개를 숙인다.
#2
예배와 공과공부를 마친 찬영이는 누나와 형들에게 편지를 썼다.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면서도 모르는 글자를 한자 한자 물어가며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썼다.
아이들은 오후 활동을 마치고 귀가했고 나는 선생님들과 예배당 뒤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남자 선생님이 갑자기 휴대폰을 건네며 남자 선생님의 어머니되시는 권사님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단다. 권사님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전도사님. 다름이 아니라 찬영이가 집에 돌아왔는데 돌아오자마자 혼자 계속 뭐라뭐라 말을 하더라고요. 이상하다 그러면서 감기도 걸리고 손가락도 다쳐서 아프다고 전도사님한테 오늘 내내 얘기를 했는데 전도사님이 기도를 안해주더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아프거나 다쳤을 때 전도사님이 기도해주시면 다 낫는데 오늘은 기도를 안해주셨다고. 그래서 그러면 전도사님한테 기도 좀 해달라고 말하지 그랬냐고 하니까 자기가 몇 번이나 전도사님한테 가서 아프다고 말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기도를 안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기도해달라는 말은 못하고 혼자 맘에 담아두고 있길래 부탁하나 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이따가 집으로 전화 한 번 해주시면 찬영이 바꿔드릴테니까 기도 좀 해주세요."
인도네시아로 이민을 가야한다는 소식을 들은 찬영이는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음식을 먹기만 하면 구토를 해서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누워있곤 했다(그게 벌써 한 달 전이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한지 그나마 잘 먹고 잘 어울려 노는 거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여섯 살 짜리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아팠을꼬.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주일이었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강대상 뒤로 데리고 가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었다.
"사랑의 하나님! 찬영이가 스트레스 때문에 요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기만 하면 배가 아파서 몹시 힘들어하고 있어요. 오늘도 배가 아파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찬영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걱정과 불안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들도 하나님께 맡기오니 찬영이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처럼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주세요. 걱정과 불안은 하나님께 쏟아버리게 해주시고 기쁨과 평안으로 찬영이 마음을 채워주세요. 찬영이가 인도네시아로 떠날 때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찬영이의 몸과 마음을 주장하셔서 다스려주세요. 또한 찬영이 몸에 있는 모든 세포들이 원활하게 기능을 해서 오늘 하루 찬영이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게 해주세요. 오늘 하루 건강한 몸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새로운 기운도 불어 넣어 주세요. 찬영이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이들이 몸이 아프거나 다칠 때면 종종 아이들을 안고 같이 기도를 했더랬다. 찬영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몇 주 동안은 찬영이를 주시하며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곤했었다. "하나님, 살고 싶어요." 그 옛날 어린 날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똑똑히 기억하기에 아이에게 또한 그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를 했더랬다. 혹자는 플라시보 효과일 뿐이라고 생각하겠고 아이는 전도사님이 기도를 해주셔서 몸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아이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도해달라는 말은 못하고 나만 보면 손가락도 아프고 감기 때문에 목이 아프다고 얘기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같은 사람을 전도사라고 믿고 따라와주는 아이들이 있구나! 그런 아이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는 권사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우냐. 청년부 모임을 마치고 기태 선생님께 부탁해 찬영이를 불러냈다. 아이는 열이 올라 볼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계단에 앉아 아이를 품에 안고 기도를 했더랬다. 그리고 아이에게 전해주었다.
"찬영아, 전도사님이 기도해줬기 때문에 몸이 좋아진 게 아니라 찬영이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찬영이의 기도를 들으신거야. 찬영이를 낫게 해주신 분이 누구시지? 하나님이시지? 하나님이 찬영이와 지금 함께 하시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함께 하시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찬영이 입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돼. 하나님은 찬영이를 너무 사랑하셔서 항상 지켜보시기 때문에 찬영이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엄청 기뻐하셔."
어린왕자의 말마따나 어른들은 숫자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만다.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비로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된다. 수치나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 한 아이의 웃음소리와 한 아이의 믿음의 고백이 나에게는 사막의 샘이었다. 너희들을 만나게 하시고 너희 곁에 머물게 하신 그분의 뜻을 지금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나도 잠잠히 기다려야겠다.
요며칠 마음 속에 품었던 생각을 그분께서 아시기에 그분 앞에서의 내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으나, 나같은 사람도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심이 감히 감사할 따름이다. 아버지여. 저의 본분이 사역의 궁극적 주체가 되시는 아버지 당신의 종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새해 첫 번째 주일이다. 남성역 2번 출구 버스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가씨, 교회 가시지요?"
"어! 기사님, 안녕하세요! 이번이 네 번째네요?"
두둥!
이 기사님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댁은 숭실대 부근이시고 종종 우리 교회 맞은 편 테니스장에 오셔서 테니스를 즐기는 멋진 분이시다. 그리고 아리따운 따님이 있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종종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정전도사가 종종 뵙는 기사님이시다. "송파 예비군 훈련장 지나서 내곡동 가구단지 가주세요."라는 말이 필요없는 유일한 기사님! 교회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때마다, 마음이 지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마다 이 기사님을 만나게 된다. 마치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처럼!
그런데 오늘은 아니잖아요! 기사님을 뵐 준비가 안됐다구요. 왜 하필 오늘이에요?
전날부터 주일 사역을 준비하느라 거의 탈진한 상태로 집을 나선 정전도사는 넋은 반쯤 나가 있었고 얼굴은 반쯤 덜 완성되어 있었더랬다. 택시를 타면 일단 잃었던 얼굴을 되찾겠노라고 다짐을 했건만 이게 뭐람!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기사님을 만나다니! 이 기사님 앞에서는 거울을 꺼내들고 화장을 하기가 부끄러워서 선블록만 간신히 펴발랐다. 준비했던 설교 원고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도 포기했다.
그날은 웬지 기분이 울연해서 말없이 멍청히 앉아 있기만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양재 IC방면으로 접어들 때쯤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기사님께 말을 건냈다.
"기사님. 새해 첫 주에 기사님을 만나니 꼭 선물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요."
갑작스럽긴 했지만 기사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이자 선물이었으니까.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나도 그래요. 아가씨 만나서 나도 좋아요. 집이 그쪽이니까 일요일이면 아가씨 나오는 시간에 종종 거기서 기다렸다가 오거든. 그런데 오늘은 만났네."
2015년 어느날, 처음 만난 기사님은 일요일 아침에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냐며 집이 원래 그쪽이냐 아니면 출근을 하는 것이냐 물으셨다. 교회에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집 앞에 있는 가까운 교회를 가지 왜 그렇게 멀리 가냐고 하셨다. 나는 아이들 가르치러 간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나는 교회 아가씨가 됐다. 공교롭게도 그 후로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사님 택시를 몇 번 더 타면서 기사님과 각별한 사이가 됐더랬다.
기사님은 종종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택시를 몰며 보고 들은 것들을 아저씨만의 색깔을 덧입혀 들려주시곤 하셨다. 손님을 모시고 구 사랑의 교회 집회 현장에 갔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좋아 보여 씁쓸했더라는 이야기, 교회에 가는 분들은 이사를 가서도 이전에 다니던 교회를 가느라 멀리서도 교회를 가더라는 이야기 등등. 가끔은 교회 아가씨로서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다. 아저씨를 통해 듣는 교회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아저씨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참 따뜻한 분이시다. 딸벌 되는 손님에게 꼬박꼬박 손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불러 주시며 솔직하고 담백하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럴 때면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져서 사역할 힘이 생기곤 했다. 그러고 나서 내릴 때면 나도 아이들 주려고 사온 작은 주전부리들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곤 했었다(어떤 날은 바나나를 드린 적도 있었다).
"잘하고 있어. 내가 다 지켜보고 있어. 힘내렴."
그 기사님을 뵐 때면 하나님께서 내게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은 날이 아니었다. 정전도사는 사역도 접고 휴학한 후에 뉴욕 Metro World Child에 가겠다는 꿈에 부풀었다가 바로 며칠 전에 피눈물을 삼키며 내려 놓지 않았던가. 모 교회 중고등부도, 대형 교회인 S교회 사역 제안도 거절하고 아이들이 열명도 채 안되는 교회에 남아서 일년 더 사역하겠다는 마음을 품었던 내가 갑자기 한심하고 덜 떨어져보여서 울적한 그런 날에. 사역자로서의 개인적인 성장을 생각하면 Metro World Child 인턴십 과정은 내게 여러모로 유익할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전도사가 되어야 하니까,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지 자기 자신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니까, 자신의 말과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니까 내려놓기는 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날, 하필이면 그날 그 기사님을 뵌 것이다.
알 수 없는 감정들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나님께서는 혼내거나 다그치지 않으시고 이번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잘했어. 내가 다 지켜보고 있어. 힘내렴."
그분의 한 없는 사랑 앞에 부끄러움만 덩그러니 남아 고개를 숙인다.
#2
예배와 공과공부를 마친 찬영이는 누나와 형들에게 편지를 썼다.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면서도 모르는 글자를 한자 한자 물어가며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썼다.
아이들은 오후 활동을 마치고 귀가했고 나는 선생님들과 예배당 뒤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남자 선생님이 갑자기 휴대폰을 건네며 남자 선생님의 어머니되시는 권사님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단다. 권사님께서 내게 하실 말씀이?
"전도사님. 다름이 아니라 찬영이가 집에 돌아왔는데 돌아오자마자 혼자 계속 뭐라뭐라 말을 하더라고요. 이상하다 그러면서 감기도 걸리고 손가락도 다쳐서 아프다고 전도사님한테 오늘 내내 얘기를 했는데 전도사님이 기도를 안해주더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아프거나 다쳤을 때 전도사님이 기도해주시면 다 낫는데 오늘은 기도를 안해주셨다고. 그래서 그러면 전도사님한테 기도 좀 해달라고 말하지 그랬냐고 하니까 자기가 몇 번이나 전도사님한테 가서 아프다고 말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기도를 안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기도해달라는 말은 못하고 혼자 맘에 담아두고 있길래 부탁하나 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이따가 집으로 전화 한 번 해주시면 찬영이 바꿔드릴테니까 기도 좀 해주세요."
인도네시아로 이민을 가야한다는 소식을 들은 찬영이는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음식을 먹기만 하면 구토를 해서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누워있곤 했다(그게 벌써 한 달 전이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한지 그나마 잘 먹고 잘 어울려 노는 거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여섯 살 짜리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아팠을꼬.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주일이었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강대상 뒤로 데리고 가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었다.
"사랑의 하나님! 찬영이가 스트레스 때문에 요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기만 하면 배가 아파서 몹시 힘들어하고 있어요. 오늘도 배가 아파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찬영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걱정과 불안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랑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친구들도 하나님께 맡기오니 찬영이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처럼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주세요. 걱정과 불안은 하나님께 쏟아버리게 해주시고 기쁨과 평안으로 찬영이 마음을 채워주세요. 찬영이가 인도네시아로 떠날 때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찬영이의 몸과 마음을 주장하셔서 다스려주세요. 또한 찬영이 몸에 있는 모든 세포들이 원활하게 기능을 해서 오늘 하루 찬영이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게 해주세요. 오늘 하루 건강한 몸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새로운 기운도 불어 넣어 주세요. 찬영이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이들이 몸이 아프거나 다칠 때면 종종 아이들을 안고 같이 기도를 했더랬다. 찬영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몇 주 동안은 찬영이를 주시하며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곤했었다. "하나님, 살고 싶어요." 그 옛날 어린 날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똑똑히 기억하기에 아이에게 또한 그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를 했더랬다. 혹자는 플라시보 효과일 뿐이라고 생각하겠고 아이는 전도사님이 기도를 해주셔서 몸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아이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도해달라는 말은 못하고 나만 보면 손가락도 아프고 감기 때문에 목이 아프다고 얘기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같은 사람을 전도사라고 믿고 따라와주는 아이들이 있구나! 그런 아이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는 권사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우냐. 청년부 모임을 마치고 기태 선생님께 부탁해 찬영이를 불러냈다. 아이는 열이 올라 볼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계단에 앉아 아이를 품에 안고 기도를 했더랬다. 그리고 아이에게 전해주었다.
"찬영아, 전도사님이 기도해줬기 때문에 몸이 좋아진 게 아니라 찬영이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찬영이의 기도를 들으신거야. 찬영이를 낫게 해주신 분이 누구시지? 하나님이시지? 하나님이 찬영이와 지금 함께 하시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함께 하시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찬영이 입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돼. 하나님은 찬영이를 너무 사랑하셔서 항상 지켜보시기 때문에 찬영이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엄청 기뻐하셔."
어린왕자의 말마따나 어른들은 숫자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만다.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비로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된다. 수치나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 한 아이의 웃음소리와 한 아이의 믿음의 고백이 나에게는 사막의 샘이었다. 너희들을 만나게 하시고 너희 곁에 머물게 하신 그분의 뜻을 지금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나도 잠잠히 기다려야겠다.
요며칠 마음 속에 품었던 생각을 그분께서 아시기에 그분 앞에서의 내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으나, 나같은 사람도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심이 감히 감사할 따름이다. 아버지여. 저의 본분이 사역의 궁극적 주체가 되시는 아버지 당신의 종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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