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에게 대지는 우리 인간에 대한 그 어떤 책들보다도 더 깊고 긴 가르침을 준다. 우리 자신들을 스스로 견뎌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장애물과 싸워 헤쳐 나갈 때, 스스로를 발견하는 법이다. 그런데 장애물을 극복하자면 대패, 혹은 수레 등과 같은 그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 농부는 농사일을 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비밀을 조금씩 캐낸다. 그리하여 농부가 끄집어낸 진리는 보편성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항공 노선에서의 도구가 되는 비행기는 그 모든 해묵은 문제들 속으로 인간을 끌어들인다.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야간 비행을 하던 날의 풍경은 언제나 두 눈에 선하다. 그 까만 밤, 평야에서는 띄엄띄엄 산재해 있던 불빛만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어둠의 심연에서 각각의 불빛은 의식의 경이로움을 알려왔다. 그 불빛 하나하나 속에서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있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사색에 잠겨 있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는 계속해서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어떤 불빛들 속에서는 누군가가 우주를 관측하느라 여념이 없었을 것이고, 안드로메다 성운에 대한 계산을 하는 데에 온통 시간을 다 써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시인이나 교사, 목수의 것과 같이 가장 소박한 불빛에 이르기까지, 전원 풍경 속에서 군데군데 피어나는 불빛들은 각자의 양식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이 살아있는 별빛 가운데에서, 얼마만큼의 창문이 굳게 닫혀 있으며,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잠이 들었는가.
이들과 어울리려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전원 풍경 속에서 군데군데 타오르는 불빛들 가운데 몇몇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생텍쥐페리,《인간의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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