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
김기택
실제로 보니
타조(駝鳥)는 새보다 낙타(駱駝)를 더 닮았다.
타조가 낙타보다 새에 더 가깝다는 증거로
날개라는 것이 달려 있기는 하다.
타조도 가끔은 가슴을 펴고 날갯짓을 하지만
깃털 몇 개로
큰 낙타를 하늘로 들어올려보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잘라버렸음이 분명하다.
타조를 처음 본 순간
나도 타조의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타조의 이 확고한 의지는
나무 기둥 같은 다리로 곧게 뻗어나가
말굽처럼 단단한 발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 의지에 눌려
날개는 몸속으로 깊이 들어가
유난히도 길고 유연한 목으로 솟아오르고
말처럼 빠른 다리로 뛰어나가고 있다.
날지 못한다는 것만 빼면
타조는 나무랄 데 없이 완전한 새.
그래도 타조를 새라고 생각하니
낙타 같은 얼굴과 걸음걸이며
뱀같이 구불거리면서 먹이를 찾는 목 따위가
참을 수 없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타조는 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슬픔을
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한참 동안 타조를 보고 나서
타조의 이 방약무인하고 당당한 슬픔에
나는 다시 한 번 전적으로 동의하고 말았다.
소 닭 보듯
타조들이 높이 나는 새들을 보고 있다.
지난 주 희랍어 시간에 김동훈 선생님께서 읊어주신 인상깊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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