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노동은 일하는 사람의 성취를 위한 것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사람을 만들고”와 “그들로……다스리게 하자”라는 창세기 1:26의 두 문장은 한 쌍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에 하나님과 함께 다스린다. 그래서 창조적인 일에 대한 인간의 잠재력은 하나님을 닮은 인간성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노동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인간일 수 없다. (바쁘지 않고) 한가롭거나 (창조적이지 않고) 파괴적인 사람은 인간성을 부인한 결과 자아성취를 박탈당할 것이다. (후략)
둘째, 노동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경작하여 가족을 먹이고 입혔을 것이다. 성경은 남을 섬기기 위한 생산성을 강조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소산물은 가난한 사람과 고아와 과부, 외국인들과 나누어야 했다. 바울은 도둑질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일하라고 말했다(엡 4:28).
셋째, 노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과 협력하기를 원하셨다.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맡기셨다. 동산을 만드셨지만, 동산을 돌볼 사람을 지정하셨다. (중략) 창조와 경작, 자연과 문화, 원재료와 손재주는 사실 하나다. 루터의 표현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친히 우유를 짜신다.”
신인협업이라는 개념은 모든 일에 적용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존하시려고 이 땅의 삶을 그렇게 조직하셨다. (중략) 우리는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이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물질생활(의식주와 건강)은 물론이고 사회생활(문명화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서도 삶의 필수품을 서로 의지한다. 따라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건, 그 일을 하나님이 인간을 성숙하게 이끄시는 과정에서 우리가―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협력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 (후략)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일을 정의할 수 있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만족을, 공동체에는 유익을, 하나님께는 영광을 주는 육체 또는 정신 에너지의 지불.”
- 존 스토트(성공회 신부, 1921-2011), 《모퉁잇돌 그리스도, Christ the Cornerstone》, 2부 그리스도의 제자, 10장 노동에 대한 성경적 교리 회복하기, 1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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