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문제는 통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제3세계에는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있고, 서구에는 심리적 트라우마 문제가 있다. 산업심리학자들은 실직을 사별에 비유하여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충격이다. “쓸모없다”(끔찍한 단어)는 판단은 자아상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어떤 사람은 “즉시 모욕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혼자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숫자로 전락했어. 나는 실업자야.” 두 번째 단계는 우울과 비관주의다. 이쯤이면 잔고도 거의 바닥나고 새 일을 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암울하다. 무기력에 빠져든다.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다. “하루 종일 뭘 하지? 나 혼자 침체되는 것 같아.” 세 번째 단계는 체념이다. 장기 실업자의 경우에는 희망도 노력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억울한 마음이 들고 낙담한다. 이런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고 인격이 무너지기 쉽다.
성경적 노동 교리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현대 실업 문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첫째, 실업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이른바 개신교 노동 윤리는 근면을 격려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전쟁에서 패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확실히 게으름뱅이지만, 실업자의 대다수는 일하고 싶어 하는, 사회 제도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쓸모없다”라는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더 큰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중략) 실직은 오명이 아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바울의 격언은 비자발적 실업자가 아니라 자발적 실업자에게 한 말로, 실직이 아니라 게으름을 정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직자를 이해하고, 환대하고, 지지하고, 상담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되고 만다.
둘째,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요구해야 한다. 영국 정부는 세금 유인책, 지역 정책, 재훈련, 보조금 등을 통해 많은 일을 해냈다. 하지만 심각한 실업의 경우, 그리스도인은 더 많은 고용 기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와 지방 정부, 기업가, 고용주, 노동조합에 주저 없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영국의 어떤 교회와 기독교 단체는 직접 일자리 창출에 나서기도 했다.
셋째, 노동과 고용의 차이를 기억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은 고용 부족(돈을 받는 일자리가 없는 상태)이 아니라, 노동 부족(어떤 형태의 일이든 자기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중략) 자긍심의 수단인 노동의 의미는 노동의 수입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람을 고용하여 땅을 파고 다시 메꾸는 일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월급은 줄지 몰라도 자긍심은 주기 어렵다. 돈을 못 버는 일일지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도와주면 자긍심을 줄 수 있다. 실업자도 얼마든지 시간과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후략)
창조적인 여가 기회를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급여를 받지 못한다 해도)의 진정한 형식이고, 끝없는 텔레비전 시청 시간에서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손수 집 고치기, 자가용 정비, 목공이나 금속 공예, 옷 만들기, 도예, 그림 그리기, 조각이나 글쓰기, 교도소 방문과 환자 방문 같은 사회봉사 활동, 정신장애나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 돕기, 글을 못 읽는 사람들에게 글 가르치기 등은 몇 가지 예에 불과할 뿐이다. (중략) 하지만 나는 인류는 창조적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성경 진리에 호소하고 싶다. 게으른 사람은 자아를 찾을 수도,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다. 우리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배출 수단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기술을 배우거나 연마할 만한 시설이 없고 그런 시설을 찾을 수 없다면, 교회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어떤 형식으로든 계속해서 봉사에 사용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 자신에게 만족을,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 존 스토트(성공회 신부, 1921-2011), 《모퉁잇돌 그리스도, Christ the Cornerstone》, 2부 그리스도의 제자, 11장 창조적으로 창조된 인간: 사람에게 일이 필요한 이유, 10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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