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보다 실이 많았다. 주요 언론에서는 성소수자 혐오세력으로 묘사할 뿐이다. 반대집회는 소수자의 인권을 탄압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강화시켰고 결과적으로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노이즈마케팅 효과만 낳았다. 즉흥적 감정적 대응은 효과적이지 않을 뿐더러 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 하버마스의 말처럼 어떤 집단을 대표해 입장을 표명하려고 할 때는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바꿀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통의 이미지가 굳어지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더더욱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할테니 말이다. 총신, 뱀처럼 지혜로워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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