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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사람19

디트리히 본회퍼, '성속 이분법의 위험성'(<나를 따르라> 중에서) 수도원 제도는 기독교의 세속화에 맞서고,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드는 것에 맞서는 생생한 저항이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이 저항을 참아 줌으로써 이 저항이 결정적으로 폭발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그것을 상대화했다. 실로 교회는 이로부터 자신의 세속화된 생활을 정당화할 길을 얻었다. 왜냐하면, 수도원 생활은 이제 소수의 사람이 수행하는 별난 행위, 곧 대다수 교인이 의무로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내리신 명령의 유효성을 위험천만하게도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특정한 집단에 국한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복종의 행위를 가장 높은 수준과 가장 낮은 수준으로 구분하는 일이 빚어졌다. (중략) 하지만 수도원 제도가―예수의 말뜻을 내용상 오해하여―예수를 엄격히 따르는 은혜의 .. 2021. 2. 17.
디트리히 본회퍼, '값비싼 은혜'(<나를 따르라> 중에서) 값비싼 은혜는 밭에 숨겨진 보화다. 사람은 그 보화를 얻으려고 가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팔아서 그 밭을 산다. 값비싼 은혜는 귀중한 진주다. 상인은 자기의 모든 상품을 값으로 내어 주고 그 진주를 산다. 값비싼 은혜는 그리스도의 왕권이다. 사람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기를 넘어지게 하는 눈까지 뽑아 버린다. 값비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을 받은 제자는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른다. 값비싼 은혜는 우리가 되풀이해서 찾아야 할 복음, 우리가 구해야 할 은사, 우리가 두드려야 할 문이다. 은혜가 값비싼 것은 따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은혜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은혜가 값비싼 것은 사람에게 목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은혜인 것은 사.. 2021. 2. 17.
디트리히 본회퍼, '값싼 은혜'(<나를 따르라> 중에서)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숙적이다. 오늘 우리의 투쟁의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투쟁이다. 값싼 은혜란 투매 상품인 은혜, 헐값에 팔리는 용서, 헐값에 팔리는 위로, 헐값에 팔리는 성찬, 교회의 무진장한 저장고에서 무분별한 손으로 거침없이 무한정 쏟아내는 은혜, 대가나 희생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은혜를 의미한다.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미리 계산을 치렀으니 선급한 계산서를 토대로 무엇이나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은혜의 본질이고, 미리 지급한 대가가 무한히 큰 까닭에 사용 가능성과 낭비 가능성도 무한히 크며, 은혜가 값싸지 않다면 그것이 어찌 은혜이겠냐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교리, 원리, 체계로 통칭하는 은혜, 보편적인 진리로 통칭하는 죄의 용서, 기독교의 하나님 관념으로 통칭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2021. 2. 17.
디트리히 본회퍼,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줄 다른 그리스도인을 필요로 한다'(<성도의 공동생활> 중에서)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제입니다. (중략) 종교개혁자들은 우리의 의는 ‘낯선 의 fremde Gerechtigkeit’, 즉 우리 밖에서 extra nos 주어지는 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자들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외부를 향해, 그에게 주어지는 말씀을 향해 서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의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에게 “당신의 구원과 당신의 행복, 당신의 의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는 결코 자신을 가리킬 수 없으며, 그에게 구원과 행복, 의를 약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것입니다. .. 2021. 2. 16.
디트리히 본회퍼, '당신의 원수들 한복판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해야 한다'(<성도의 공동생활> 중에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지금부터 저는 말씀 아래 더불어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몇 가지 훈계와 규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허락된 것은 전혀 자명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들 한복판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자들마저도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행악자와 조롱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완전히 홀로 남겨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평화를 선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수도원적 은둔생활이 아니라, 원수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일과 사명이 바로 그곳.. 2021. 2. 16.
20.12.03. 이사야서 도장깨기 목요일은 야근하는 날, 야식 먹는 날, 막차 타는 날. 오늘은 이사야서 도장깨기!😓 2020. 12. 3.
20.11.24. Daily Bread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아와 쉼을 얻을 수 있다. 그분이 주시는 쉼은 순종할 수 있는 합당한 능력을 주지도 않고 요구만 하는 율법의 멍에가 아니다. 예수께서도 멍에를 주신다. 그러나 요구가 큰 만큼 성령을 통해 더 큰 능력이 베풀어지기 때문에, 그분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 이렇게 꼼꼼히 편집하시면 제가 별로 할 게 없잖아요. 선배님, 리스펙트! 😆 2020. 11. 24.
20.11.05. 역사서 2교 감수를 하는 건지 편집을 하는 건지 재번역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다. 걱정하지마. 원서보다 좋은 책이 될 거야 너는. 2020.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