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환기305 수호천사 아버지, 오늘도 교회에 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칭얼대면 기사님 뵙게 해주시나요? 빨래 건조대에 수건을 널며 마음 속으로 읊조린 자조섞인 한탄이었다. 쇳덩이처럼 무거운 발을 이끌고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손을 흔드는데 경적을 가볍게 울리며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스르륵 섰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뒷문을 열자마다 검은 선글라스 뒤로 낯익은 미소가 보였다. 수호천사 기사님이 아니신가! 내 영성이 바닥을 칠 때에는 이런 방법으로도 그분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시는구나. 올해 초에 한 번 뵙고나서 반년만에 기사님을 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기사님 뵙는 날이면 꼭 하나님이 보내주신 수호천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말씀 드리고 말았다. 기사님께 드릴 만한 마땅한 명함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2016. 6. 28. Miserere mei Deus 아버지, 민낯의 저는 이기적인 모순 덩어리입니다. 만인에 대한 부채감과 자기모멸감이 저를 짓누릅니다. 2016. 4. 22. 긴긴밤이 오기 전 긴긴밤이 오기 전 대지를 다독이듯이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석양이 내려 앉았다.지난주 토요일, 11년 동안 사용해 온 보라색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 하나 잃어버렸다고 설에 집에 내려가는 것도 포기하고 히키코모리처럼 방에 처박혀서 꼼짝달싹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겨울 들어 처음 앓는 감기 탓을 해보았지만 마음이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이와중에 서늘한 자취방은 며칠 동안 짙은 응달에 우중충했다. 폐인 생활이 싫증날대로 나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데 지금 내 꼬락서니가 영 보기에 못마땅했다. 그맘때쯤이었다.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은 현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가야겠다... 2016. 2. 9. 이화동 Y를 소환시키다 에피톤 프로젝트 이화동을 들을 때마다 Y가 떠오른다. 벚꽃 흐드러지게 핀 4월의 신촌 명물거리를 걸으며 언젠가는 이 거리를 그 사람과 꼭 한 번 같이 걷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는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바보처럼 마음이 순수하고 따뜻했던 사람. 계산없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었던 사람. 2016. 1. 25. 그늘이 있는 사람 (두고두고 기억해두고 싶은 문구가 있어서 김응교 교수님의 몸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기타리스트 김수로헌의 핑거기타 음색은 매우 독특하다. 첫째, 왼손잡이인 그는 왼손의 운지가 매우 정확해서 새는 소리가 없다. 둘째, 기타줄을 눌렀다 떼면서 소리를 내는 태핑을 할 때 손가락 힘이 오른손잡이만큼 세서 큰 소리가 난다. 셋째, 엄지로 1번 줄 때리는 헤머링은 국내에서는 거의 탑 수준이다. 넷째, 손톱이 아닌 손가락의 맨살로 친다. 일부러 엄지 손가락의 부드러운 살로 치는 기법을 자주 사용해서 따스한 느낌이 든다. 살가운 소리! 판소리는 그늘이 없으면 덜 됐다고 한단다. 음악에도 그늘이 필요한데 그늘은 변두리를 많이 체험하면 생긴단다. 그늘이 없으면 손기술과 쇼맨십으로 연주하게 된다고. 김수로헌의 뚱뚱한 식.. 2016. 1. 6. est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Praedicatio verbi Dei est verbum Dei"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의 선포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게 하시고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 실존을 파고들어 역사하게 하신다. 2015. 12. 7. 장 피에르 코사드의 기도 주님 당신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작은 피조물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소서. 모든 것이 당신의 소유이며, 당신에게서 왔고,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제게는 더는 돌보거나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다스려야 할 순간은 단 일 초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제 처지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묻지 않으며 생각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처분에 달렸습니다. 거룩, 완전, 구원, 인도, 회심,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일입니다. 제 역할은 당신에게 만족하며 제게 뭔가를 덧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선한 뜻에 맡깁니다. 장 피에르 코사드(예수회 수도사, 1675-1751) 《Abandonm.. 2015. 11. 21. 무제 목놓아 울고 싶다. 2015. 10. 28. 이전 1 ··· 35 36 37 38 3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