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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편린

젊음

by 아나빔 2014. 11. 29.
2007년 어느 여름 저녁, K와 신촌 지하 바에 마주 앉아 도란도란 나눴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K는 꿈에 대한 간절함이 있던 20대 초반의 젊음이 아름답다 말했고, 나는 K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K의 자리에 서서 그때의 나를 바라본다. 반추해보면 젊음은 늘 새로움과 낯섦이라는 세계 그 자체였다. 나의 이십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설렘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때는 K의 완숙한 젊음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것 같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K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에 퇴근하는 연구조교 생활을 하며 외국계기업 취업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가끔 학교 앞 오락실에서 드럼스틱을 잡는 것 외의 일탈은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일종의 작은 저항이었다고나 할까?

어느 날 K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K의 반응이었다. '어른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생에 대한 경험은 한편으로는 지혜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른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이해해드리는 편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K는 유연한 사고력을 젊음의 중요한 표징 중 하나로 여겼다. 그리고 그 자신도 현상을 분석하기를 즐기면서도 쉽게 평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가끔 K가 되어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이제 낯설고 새로운 것이 두렵다. 익숙한 게 더 좋다. 꿈이라는 허상에 나를 희생시키고픈 마음도 없다. 물론 더 이상 간절하게 원하는 것도 없다. 조금 더 편하고 안정적인 길 위에서 무탈하게 사는 것 외에 다른 바람이 없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과도 매일매일 싸워야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삶도 피곤하게 느껴진다. 나를 둘러싼 외부세계의 요구에 순응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기도 하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사고방식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고 싶기도 하다. 나는 정말이지 젊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 젊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쟁취하는 것이리라. 젊음이 시기가 아니라 상태라고 한다면, 늙어감이 낡아감이 되지 않도록, 늙어감이 늘어감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쟁취할 수 있는 젊음인 것이다. 나는 이 긴 싸움에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적어도 K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왜 좋아하는 지 알았고 자기 나름대로 그런 것들을 지키는 법도 알았던 사람인데 말이다. 나는 박제된 젊음에 대한 애가를 부르기엔 아직은 이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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