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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아카이브49

마틴 부버, '너와 나의 만남'(<나와 너> 중에서) ​‘너’와 나의 만남은 은혜로 ​​이루어진다.​ ​찾아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향해 저 근원어를 말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기울인 행위요, 나의 본질 행위다. ‘너’는 나와 만난다. 그러나 ‘너’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들어서는 것은 나다. 그러므로 ​관계란 택함을 받는 것인 동시에 택하는 것이며, 피동인 동시에 능동이다. 그것은 마치 온 존재를 기울인 능동적 행위에 있어서는 모든 부분적인 행위가 정지되고, 그리하여 모든─한갓 부분적인 행위의 한계에 근거를 둔─행위감각(行爲感覺)이 정지되기 때문에 그 행위의 능동성이 수동과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근원어 ‘나-너’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해질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나의 힘으로 되는 것.. 2019. 4. 15.
라이너 마리아 릴케, 《별과 별 사이는 참으로 멀다》 별과 별 사이는 참으로 멀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아득히 멀다. 어떤 한 사람, 예를 들면 어떤 한 아이……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사람, 다음 사람─, 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운명, 그것은 아마도 존재하고 있는 것의 잣대로 우리를 재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서름하게 보인다. 생각해보라, 소녀와 애인의 사이만 하더라도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그녀가 그를 피하고 있으면서도 사랑하고 있을 때, 모든 곳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동그라미가 닫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보라,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 주발에 담겨있는 물고기들의 기이한 얼굴을. 물고기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왔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결국, 물고기의 말일지도 모르는 것을 그들이 없는.. 2018. 11. 26.
라이너 마리아 릴케, 《끝이 없는 깊은 동경에서》 끝이 없는 깊은 동경에서 때맞게 떨며 기우는 허약한 분수처럼 끝이 있는 온갖 행위가 솟아오른다. 그러나 여느 때는 말수가 적은 우리들의 즐거운 힘이─ 이 춤추는 눈물 속에 나타난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끝이 없는 깊은 동경에서’(, 형상시집 (송영택 역, 문예출판사, 2014) 수록) 2018. 11. 2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 눈을 꺼 보십시오》 제 눈을 꺼 보십시오,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제 귀를 막아 보십시오, 그래도 당신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리 없이도 저는 당신에게 갈 수 있습니다. 입 없이도 당신에게 청원할 수 있습니다. 저의 팔을 꺾어 보십시오, 손으로 하듯 저는 저의 심장으로 당신을 붙잡습니다. 저의 심장을 멎게 해 보십시오, 저의 뇌가 맥박칠 것입니다. 당신이 저의 뇌에 불을 지피면 저는 저의 피에 당신을 싣고 갈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제 눈을 꺼 보십시오’(, 시도서 2권 순례자 (송영택 역, 문예출판사, 2014) 수록) 2018. 11. 2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자기 생활의 갖가지 모순을 화해시키고》 자기 생활의 갖가지 모순을 화해시키고,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의 상징 속에 포괄하는 사람은 떠들썩한 무리들을 저택에서 몰아내고 다른 잔치를 융숭하게 베푸리라. 그리고 당신은 조용한 저녁에 맞아들이는 그의 손님입니다. 당신은 그의 고독의 상대자, 그의 독백의 움직이지 않는 중심입니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그어진 모든 원이 그를 위하여 시간 바깥에 원둘레를 치고 있습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자기 생활의 갖가지 모순을 화해시키고’(, 초기시집 (송영택 역, 문예출판사, 2014) 수록) 2018. 11. 26.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나의 갖가지 감각이 깊이 잠겨드는》 나는 나의 갖가지 감각이 깊이 잠겨드는 내 존재의 어둑한 시간을 사랑한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옛 편지에서처럼 이미 살았던 나의 일상생활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전설처럼 아득하며, 잘 극복되었음을 알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시간을 초월한 두 번째의 널찍한 삶이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때때로 나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소년이 슬픔과 노래 속에서 잃어버린 꿈을, 그 꿈을 무덤 위에 살려내는 나무, 다 자라서 와삭거리는 (따듯한 뿌리가 무덤 속의 소년을 감싸고 있는) 그런 나무와 같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나는 나의 갖가지 감각이 깊이 잠겨드는’(, 초기시집 (송영택 역, 문예출판사, 2014) 수록) 2018. 11. 26.
알렉산드르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2018. 2. 12.
박노해,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토록 애써온 일들이 잘 안될 때 이렇게 의로운 일이 잘 안될 때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뜻인가" 길게 보면 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이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시키시려는 건 아닌가 하늘 일을 마치 내 것인 양 나서서 내 뜻과 욕심이 참뜻을 가려서인가 "능인가" 결국은 실력만큼 준비만큼 이루어지는 것인데 현실 변화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해 처음부터 지는 싸움을 시작한 건 아닌가 처절한 공부와 정진이 아직 모자란 건 아닌가 "때인가" 흙 속의 씨알도 싹이 트고 익어가고 지는 때가 있듯이 모든 것은 인연따라 이루어지는 것인데 세상 흐름에 내 옳음을 맞추어 내지 못한 건 아닌가 내가 너무 일러 더 치열하게 기다려야 할 때는 아닌가 쓰라린 패배 속에서 눈물 속에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 2017.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