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편린63 어머니, 당신은 어머니, 가을 하늘이 참 청명합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소박하고 질박한 마음새가 비록 세련되지는 않지만 당신을 여전히 아릅답게 합니다. 2016. 8. 26.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에 대한 소회 득보다 실이 많았다. 주요 언론에서는 성소수자 혐오세력으로 묘사할 뿐이다. 반대집회는 소수자의 인권을 탄압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강화시켰고 결과적으로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노이즈마케팅 효과만 낳았다. 즉흥적 감정적 대응은 효과적이지 않을 뿐더러 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 하버마스의 말처럼 어떤 집단을 대표해 입장을 표명하려고 할 때는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바꿀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통의 이미지가 굳어지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더더욱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할테니 말이다. 총신, 뱀처럼 지혜로워져야 할 때이다. 2016. 6. 11. 오늘 자 신정론 강의 두 살 배기 아들의 뼈가루를 직접 뿌리셨다는 말씀을 덤덤히 하시는 모습에 우리 모두 숙연해졌다. 살아있었다면 올해 열 여섯이 되었을텐데... 또래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들을 보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음이 용암처럼 끓어오른다. 2016. 5. 24. 김윤아, "키리에" 김윤아의 신곡 키리에는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나"하는 질문으로 시작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끝난다. 김윤아는 이 곡에서 타인의 아픔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매개자가 된다. 타자에 대한 공감은 타자가 머물러 있는 그 자리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다. 공감은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게 하고 너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타인의 아픔의 정중앙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는 동시에 고립된 타인에게 보내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된다. 2016. 5. 1. 합법적인 차별과 비합법적인 차별의 모호한 경계 부제: 약자들 in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총신에 적을 둔지 올해로 6년 째다. 성적 장학금의 대부분은 총총이 받을 정도로 성실한 태도로 학업에 임함에도 불구하고 낙인 아닌 낙인이 찍혀 동네 북이 된 총총에게, 몇몇 교수님들은 으레 신대원에 입학할 때부터 너희는 5학년이 아니니 조금 안다고 으스대지 말라는 말씀을 귀에 가시가 박히도록 하시지만, 죄송스럽게도 총신에서의 내 정체성은 총신 6학년이다. 신대원에서의 1년은 학부 4년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전도사님"이라는 호칭과 학급체제, 기숙사 생활과 동기들의 연령대 등등이 그러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신학은 교단 신학의 색채가 더욱 농후했다. 또한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역자로서 혹은 신학자.. 2016. 2. 26. 우레와 같은 탄식이 메아리처럼 웅웅 울리는 민중총궐기대회라는 어감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야겠다. 펜 몇 자루랑 형광펜을 사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야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일단 지하철을 탔다.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시위에 참가할 것도 아니면서 참여자도 구경꾼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서 주변을 얼쩡거릴 게 뻔한데, 나는 또 비겁하게 뒤에 숨어있을 게 뻔한데 도대체 무슨 염치로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으로 가야겠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4번 출구는 이미 의경에 의해 봉쇄됐고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는 3번 출구 뿐이었다. 나는 차벽과 차벽 사이 비무장지대 어디쯤을 서성거렸다. 살충제로 벌레를 박멸하듯 .. 2015. 11. 14. 동포와 연대할 수 있는 능력 무력감과 절망감을 안기는 능력 하나 만큼은 탁월하다. "무력감이 너무 심해지면 사람은 모든 의욕이나 희망까지 포기할 수 있다. 즉 사람은 '고통을 견디기 너무 힘들면 그것을 끝내고 싶은 희망조차 잃게' 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만일 다수가 이런 심리를 갖게 되면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죽음을 기다리거나 구세주를 기다릴 뿐 자기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으며, 또 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극심한 무력감을 견디지 못해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기의 주체성이나 독립성,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고 강력한 힘, 권위에 빌붙는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무력감을 극복할 수 없다. 무력감은 근본적으로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힘, 즉 '동포와 연대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2015. 10. 12. 허수아비 나도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눈길을 거두면 너는 그 사이에 참았던 숨을 몰아쉬고 기지개를 펴고 있을테지. 고개를 재빠르게 돌리면 쑥스러운듯 베시시 웃는 얼굴을 맞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가던 길을 멈추고 연방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떼로 날아와 눈알을 뙤룩 굴리는 참새 떼를 쫓느라 허수아비는 빡지근한 허리를 뒤틀어보지도 못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논두렁을 거닐며 벼 이삭을 돌보고 너무 긁어서 진집이 생긴 등에 약을 발라주기도 하다가 태풍이 몰아칠 때면 쓰러진 벼들 세워주느라 허리 휘는 줄 모르던 네 행색이 지금은 참으로 헙수룩하구나. 황금빛 풍요의 벌판 한복판에서 어느 틈에 사위어버린 네 모습이 느꺼워 가슴이 아릿하다. 2015. 9. 28. 이전 1 2 3 4 5 6 ··· 8 다음